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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는 환경조경디자인학과 생활 전반을 소개했다. 이번 글에서는 4년 동안 실제로 학과를 다니며 느낀 점을 정리했다. 학과생활에 대한 직접적인 내용보다는 감상을 다룰 것이므로, 구체적인 학과 생활이 궁금한 사람은 이전 포스트를 읽어보길 바란다. ↓ ↓ ↓
1) 환경조경디자인학과를 선택한 이유
정말 복합적이고 다양한 이유와 동기가 합쳐져 조경과를 택했다. 그냥 간단하게 요약해서 나열하자면 아래와 같다.
- 환경, 생태 관련 윤리와 철학에 대한 관심
- 공간을 설계하는 직업에 대한 로망
- 도시 환경을 더 살기 좋게 만들고 싶다는 야망
- 답사, 제작, 설계 등 몸과 머리를 다방면으로 움직이는 일을 선호
고등학교에 막 입학할 즈음까지는 게임 기획자가 되길 희망했다. 그런데 게임 기획도 엄밀히 말하면 조경, 건축 설계랑 비슷하다. 결국 모두 누군가가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디자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환경이 가상이냐, 현실이냐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진로를 다방면에서 탐구하고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내가 게임을 기획하고 싶은 이유는 현실 속 공간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았다. 나는 더 재미있고, 아름답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야외 공간을 원했다. 내가 살아갈 도시의 모습은 지금과는 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경학과를 선택했다.
2) 올라운더가 되어간다
학년이 높아질 수록 ‘조경’은 일종의 테마이고, 그냥 점점 만능 인간이 되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랄까... 미적 감각과 지식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결국 아래와 같은 능력을 고루 갖춰야 설계를 원활히 진행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수많은 정보를 축약하여 시각화 하는 역량‘
‘수많은 아이디어를 선별하여 논리적으로(★★★) 종합하는 역량’
‘시간 관리, 일정 분배 역량’ (★★★★★)
‘효율적인 회의 진행 능력’
‘정확하게 전달하고, 정확하게 듣는 능력‘
사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중요한 역량들이다. 그래서 꼭 학과를 살리지 않아도, 잘 생존해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이상한 확신이 든다.
3) 나의 포지션을 알았다
앞에서 올라운더가 되어간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포지션을 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설계 작업이 주로 팀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누구는 설계의 디테일을 꼼꼼하게 보길 좋아하고, 누구는 시각화를, 누구는 적절한 카피라이팅을 잘 한다. 나의 경우에는 학문적인 탐구심이 강했다. 같은 것을 조사해도 더 다양한 논문을 보고, 끊임없이 파고... 판다. 또 논리적인 흐름과 설계의 방향성을 검토하는 부분에 강했다. 언제부터 이런 성격이었던 건지.. 원... 여하튼 이러한 발견을 바탕으로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고 있다. (와우)
4) 멘탈과 일정조정 능력이 늘었다
나는 원래 모든 사람에게 나이스한, 그런 사람으로 살아왔었다. (그러려고 노력했다.) 성실하고, 사람 좋고, 믿을만하고... 그런데 설계를 하다보면 체력과 정신력이 극한에 내몰리는 순간이 잦다. 38시간 째 깨어있는 채로 클릭클릭클릭... 술과 담배대신 그나마 나은 탄산음료를 들이키면서... 극한에 내몰린 상태에서조차 나이스 해지려고 노력하자,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스스로가 최상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조건만큼은 지켜내려고 노력했다. 차라리 그것이 더 책임감 있는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모호한 나이스함보다 확실한 타협이 더 낫다...
5) 만족하는 부분 / 아쉬운 부분
만족하는 부분은, 설계가라는 일에 대한 로망을 해소했다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건축 잡지를 보며, 이런 멋진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공부하고 일하는지 궁금했었다. 회사까지 다녀봐야 진짜를 아는 거겠지만, 이제 한풀이 정도는 한 것 같다. 내가 훗날 설계가가 되지 않더라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설계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능력을 시험해 볼 수 있었던 것에도 만족한다. 전에는 내가 대학원을 갈지 꿈에도 몰랐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것이 내 성향에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대했던 것보다 공간에 얽힌 이용자에 행태에 대한 부분을 깊이 공부하지 못한 점은 미련이 남는다. (그래서 앞으로 공부할 거지롱...) 식물과 지형에 대한 실습도 조금 더 많았으면 좋았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복합적인 학문이니 4년이라는 제한 된 시간 안에서 모든 부분을 깊게 배우기란 어렵겠지만 말이다.
6) 계속 조경을 할 건가?
일단은 대학원에 들어간 뒤, 도시와 관련된 정책 연구 기관에서 일하는 것을 생각 중이다. 학과를 다니며 물리적 공간의 설계 보다는 공간에 적용되는 규칙과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또한 설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책의 위력과 중요성을 깨달았다. 이런 부분을 연구해서, 결국에는 더 살기 좋은 도시설계가 실현되는데 이바지 하고 싶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조경학과를 다니며 느낀 점을 정리했다.
더 자세히 알고 싶거나 궁금한 점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길 바란다.
다만 입시와 관련된 부분은 잘 몰라서 답하기 어려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