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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리에서 공유한 연말결산 캘린더대로 하루에 1개씩 포스팅을 이어나가고 있다.
긴장과의 싸움, 토플
올해 가장 힘들었던 일은 아무래도 토플 준비이다. 작년 8월 말부터 대학원 유학을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고, 올해 10월에 목표 점수를 받고 끝낼 수 있었다. 나는 이렇게 장기간 공부해서 보는 시험을 처음 준비해 보았다. 수능이 있지 않냐고 하겠지만, 나는 수시만 준비했었기 때문에 정말 처음이 맞다. 한 번 점수가 나오면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면 됐던 다른 시험과 달리, 꼭 받아야 하는 점수가 있는 시험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알았다. 간절한 시험일 수록 긴장된다는 것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10월에 마지막 시험을 보러 가던 순간이었다. 이전까지는 토플과 대학교 학업만 병행하면 되었지만, 10월부터는 대학원 원서'도' 바쁘게 작성하기 시작해야 했다. 해당 시험에서 목표 점수를 달성하지 못하면 일정이 너무 촉박해질 뿐만 아니라 늘 마음을 놓지 못한 채로 대학원 준비를 이어나가야 했다. 나의 목표는 100점 이상이었는데, 이미 세 차례의 시험에서 98-99점이 나온 상태라 마음이 무척 조급하고 불안했다. 준비가 덜 되어 있어서 불안한 것이고, 점수도 그냥 실력대로 나온 것이라고 지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준비가 덜 되었다고 해도 이제는 꼭 결과를 얻어야만 했다. 긴장을 전혀 하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만들 시간은 없었다. 내가 보기에 주어진 기간 내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점 더 올리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긴장'이었다. 모의고사를 볼 때에는 술술 읽히는 문장이, 세 번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긴장이 되니까 다 풀고도 2-3분씩 남았던 문제들을 시간부족으로 날리곤 했던 것이다. 실패가 거듭될수록 긴장이 복리처럼 불어나, 다음 시험에서는 더 큰 압박감으로 돌아왔다. 마지막 시험이 있었던 주에는 거의 죽고 싶을 정도였다. 심호흡을 하고, 명상도 하고, 자신을 달래 보기도 했지만.. 끓다가 넘쳐버린 냄비처럼 몸과 마음이 미쳐가고 있었다. '또 긴장돼서 아무것도 눈에 안 들어오면 어떡하지?', '긴장이 안 사라지면 어떡하지?', '잘 보던 영역에서 점수가 깎이면 어떡하지...?' 응시 비용이라도 쌌으면 가벼운 마음으로 여러 번 응시했을 텐데, 이제는 부모님에게 죄송해서라도 실패할 수 없었다.
- 나는 왜이렇게 긴장을 심하게 할까?
시험을 보기 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 노력했다. 비단 시험만이 아니라, 나는 여러 방면에서 남들보다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정답은 의외로 '나 자신에 대한 포용력'에 있었다. 자신이 실패를 했을 때 용서할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인 것이다. 그런데 자기 자신에게 가혹하고, 실패를 용납하지 못하면... 꼭 혼날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처럼 실패에 대한 극심한 긴장이 생긴다.
누군가 정확히 나처럼 토플 시험에서 여러 번 실패하여, 심리적인 한계에 내몰렸다고 가정하자. 내가 그 사람의 좋은 친구라면 이런 말을 건넬 것이다.
"많이 속상하겠다."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네가 열심히 해온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걸."
만약 자기 자신을 이렇게 보듬고 용서할 수 있다면, 스스로 실패에서 일어날 힘을 얻게 된다. 하지만 나는 다정다감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데도, 자기 자신을 향해서만큼은 퉁명스러운 말밖에 나오질 않았다. 단 한마디의 위로나 공감도 건넬 수가 없었다. 입에 가시가 돋친 것처럼 말이다. 내가 내 자신과 친구였다면, 이미 오래전에 절교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발견을 말미암아 시험을 보기 전에 여러 번 자신을 보듬어 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망가져 있었던 관계기 때문에, 딱히 개선이 되진 않았다. 앞으로 꾸준히 조금씩 회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긴장이 가라앉지 않은 채로 시험장에 발을 내디뎌야 했다. 시험 시작 버튼을 누르기 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모니터에 뜬 안내문이라도 읽으며 긴장을 풀어보았다. '것봐, 시험이 아닌 글은 잘 읽히잖아. 이런 느낌으로 읽으면 돼.'라고 되뇌었다. 시험이 시작된 후에는 일부러 더 타이트한 제한시간을 두고 문제를 풀었다. 여전히 문장을 세 번씩 읽어야 겨우 머리에 들어왔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못 푸는 문제는 없었다. 시험을 다 치고 나서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그냥 기대 없이 공부를 더 했다. 그리고 5일 뒤...
드디어 결과를 받아보고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딱히 기쁘진 않았지만, 다행이었다. 한동안 이렇게 긴장할 일은 없으면 좋겠고, 다음에는 청심환이라도 먹어보자는 교훈을 얻었다. (왜 먹어볼 생각을 안 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막막하긴 하지만 나 자신에게도 다정해지기 위한 시도를 조금씩 해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